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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치즈의 아버지

국내에서 서양식 우유 생산기술이 도입된 것은 1900년대 초다. 당시 대한제국 농상공부의 프랑스 기술자가 일본으로부터 20여 두의 홀스타인 종 젖소를 도입해 지금의 서울 신촌역 부근에서 사육하며 우유를 생산한 것이 근대 낙농의 효시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도 낙농규모가 영세하고 우유 공급이 부족해 원조에 의지했다.

국내 치즈산업의 역사는 우유보다 훨씬 짧다. 치즈가 국내 최초로 본격 생산된 해는 1969년이다. 벨기에 출신의 지정환 신부가 부임지인 임실에서 산양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 임실 치즈의 출발점이었다. 지 신부는 다른 신부에게 선물로 받았던 산양을 키우면서 젖을 짜 팔면 가난한 농가에 힘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유럽의 가정에서도 치즈를 만들어 파는 곳이 많으니까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가능하다고 여겨 치즈 공장을 세웠다. 임실이 국내 치즈산업의 메카로 우뚝 선 모멘텀이었다.

지 신부가 치즈 공장을 세울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아직 치즈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이다. 공장 설립을 위한 허가기준이 있을 리 만무했다. 당시 농림부 차관은 지 신부에게“한국 사람이 치즈를 먹을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부정적이었단다. 서울의 호텔과 외국인 전용 상점, 피자 가게 등으로 판로 확보에 나선 것도 지 신부의 몫이었다. 국내 치즈산업이 크게 성장한 것은 임실에서 치즈가 생산된 후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서울우유, 삼양식품, 해태유업, 두산종합식품, 파스퇴르 유업 등이 잇따라 치즈 생산에 뛰어들면서였다.

임실군의 낙농규모는 전국대비 1%도 채 안 되지만, 치즈 생산량은 전국 30%를 차지한다. 기업 계열사인 푸르밀(옛 롯데우유)의 최대 공장이 일찌감치 임실에 둥지를 틀었고, 임실치즈농협과 숲골유가공 등 유가공업체가 임실에 자리하면서다. 임실에 치즈마을, 치즈연구소, 치즈테마파크도 만들어졌다. 국내 치즈 역사를 쓴 선점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셈이다.

지 신부가 지난해 한 월간지와 가진 생전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임실치즈의 성공을 이렇게 말했다.“전 단지 그들과 함께 한 것뿐입니다. 함께 배우고 사랑하면 뭔가가 이뤄지는 것이지요.” . 임실 치즈는 영원히 고인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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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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